여해 지음.
내 심장에 손을 얹고 말하건대, 이 분 문창과 출신이 아니라면 아무튼, 문학이나 시나리오 등의 글 쓰는 업이나 공부를 하셨던 분이다. 내가 소설을 읽는 것인지 논설을 읽는 것인지 잠시지간 헤깔릴 정도로 주제가 확실하다.
보통 등장인물의 관계진행이 내용의 전부이고, 문체도 가볍디 가벼웁게 팔락팔락 장수가 쉽게 넘어가는 것이 장르소설이다. 그런데 호모 메리지쿠스는 책이 무겁다.
어이쿠, 이북으로 읽었는데도 왜 이렇게 무겁지, 털석.
확고한 주제의식에 기반한 열린 결말 뿐만이 아니라 문체며 묘사며, 챕터마다의 인트로에 깔린 잡지식...이랄까, 고차원적인 상식이랄까... 덕분에 오랜만에 배우며 책을 읽는 기분이었다. 아, 물론 임성한 드라마 보며 딸기는 칫솔로 씻어서 먹어야 한다는 가르침을 얻는 그런 배움은 절대 아니다.
남주가 중간 부분에 여주에게 구구절절 자기 감정을 토로하는 부분이 있는데 여주는 그 소리를 들으며 마음이 흔들렸을지언정 난 정말 읽다가 육성으로 개소리하네, 소리가 튀어나왔다. 한치의 오차도 없는 끼워맞추기 궤변과 정당화들... 이 딴 소리를 하는 남주와 자기 부모 꼴을 보고도 또 흔들리는 여주라니, 책이 해피엔딩으로 끝나도 10년 뒤라는 부제를 달고 2부가 나왔을 땐 백프로 바람으로 인한 결별 중일 것이야!!!!!!!!
ㅡ 라고 존재하지 않는 등장인물들에게 화를 내서 무엇하리.
결말로 치달으며 작가는 남주에게 그럴듯한 과거의 상처와 구구절절한 심리상태 설명으로 원래 싹수는 파릇파릇한 애요, 성실했던 만큼 방황이 깊었을 뿐이요, 하고 열심히 옹호한다. 글쎄... 나는 그 중반부에서 현실의 나쁜놈들이 하는 변명과 하등 다를바없음에도 불구, '진심'이라며 외치는 남주에게 정이 뚝 떨어져 버렸다.
훠이, 훠이. 저리가.
아무튼 흔한 책은 아니다. 재미도 있었고, 흠칫흠칫 찔리면서도 나 역시 십년 뒤에 호모 메리지쿠스의 울타리 밖에서 돌팔매질을 당하는 천민계급에 속해 있게 된다면, 어떻게 처신을 해야할지 고민을 하게 되는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