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처음 입사했을 때, 나는 무엇보다도 skillful 하고 싶었다.
내가 그만큼 아무것도 모르기에, 그리고 엔지니어를 지탱하는 것은 오직 기술이라고 생각해서.
그런데 회사는 다르다는 걸 배웠다.
큰 고객사는, 크기 때문에 자체적으로 시스템을 관장하는 능력이 있고, 보안도 강해서 웬만하지 않고서는 내부적으로 처리한다. 엔지니어로서는 고객의 시스템에 접근할 수 없고 다만 고객이 궁금한 것을 알아봐주는 역할에 한정된다. 여기에 고객의 시스템이 오직 HW만 관계가 있다면?
규모 덕에 계약 단위가 커서 돈은 되는 고객이나 지원하는 입장에서는 어쩌면 스킬업에 큰 도움이 안될 수 있다.
반면에 이런저런 사고가 많이 나는 고객사, 다만 돈이 안되는 고객사의 경우 온갖 케이스를 겪으며 클 수도 있다.
나는 후자가 낫다고 생각했지. 하지만...
스킬이 좋은 엔지니어의 여부보다 중요한 것은 그가 맡고 있는 고객사인 것이다.
회사에 얼마나 큰 도움이 되는 고객사를 관장하는가, 이것이 엔지니어의 목소리가 된다. 그 고객과 사이가 좋다면 더욱 특히...
그러니까, 알겠어? 피어나는 님은 누가봐도 열심히 하고, 그렇기 때문에 피어나는 님에 대해서 크게 뭐라고 할 사람은 없을거야. 기술력도 아직은 그 연차에 따질 게 아니거니와, 내가 볼 땐 순조롭게 잘 성장하고 있어. 장애 이해도, 일처리 속도도 빠르지. 하지만 그게 중요한 건 아니라는거야. 피어나는 님, 라인을 잘 타야 한다고. 까인거야 명백하게.
눈치가 없어서 큰일인 나는 어떡하지. 일 잘하고 있다는 소리 들은 것이 의외일 정도로 난 스스로가 일머리가 없다고 생각하고 있었거든. 그런데... 정치력은 또 다른 문제야.
한 수 , 두 수 앞을 생각하는 그 커뮤니케이션 능력이 나는 부족해서 나도 스트레스인데.
이제 더이상 낮은 연차로 쉴드칠 수 없는데 기술력은 아직 너무 부족한 거 같고...
내가 여기서 살아남을 수 있을지, 나도 모르겠고, 내가 생각했던 엔지니어의 길과, 회사에서 살아남는 길은 서로 다른 방법이라는 것을 느끼고... 우울하구나.
2.
눈치는 역시 일하는데 필수 조건이다.
급하게 고객사를 바꾸었다고 해도, 설사 그 고객이 한달에 한번 잠깐 만나고 나에겐 백업을 소개할 기회조차 없이 상황이 벌어졌다고 해도, 그러면 전화라도 했어야 하는 것이다.
그리고 인수인계를 할 때는 자기가 맡고 있던 업무는 최대한 전부 해결하고 가야 하는 것이다. 다음 백업과 얘기가 된게 아니라면 말이지...
이 모든 것을 예고없이 맞닥뜨린 고객은 분노하셨습니다...
그리고 저는 죄송할 뿐이구요... 고객을 비롯해 나 대신 욕받이가 된 동료사원들에게...
이러한 고객과의 커뮤니케이션 장애는 정말 다양한 형식으로 저지르고 있는 중이다. 한국적 커뮤니케이션에 익숙하지 않다, 라고 누군가는 말했다. 왜 고객 입장에서 생각을 못하나? 라고 누군가도 말했다.
눈치가 없어서요... 자기중심적인 사고방식이 여기에 가세하나봐요... 고치려고 노력하는데 아직도 좌충우돌이라 죄송합니다.